정종의 즉위와 퇴위의 이유


조선의 둘째와 정종

이성계의 차남 방과는 그가 훗날 정종이 될 수 있었던 사건과 퇴위 직전의 짧은 집권기를 다룬다. 원래는 정종(正宗)이라 하였으나 숙종 때 능이 정비되면서 정종실록으로 바뀌었다. 1399년부터 1400년까지 그는 2년 미만 동안 왕좌를 유지했고 최고 왕의 자리로 강등되었습니다.

정종이 왕위에 오르자

태조는 두 번째 부인인 강을 무척 사랑했다. 강 선생은 총명하고 젊었으며 지배계급으로서 태조의 힘의 원천이었으며 신진사대부 창시자들과 긴밀한 인연을 맺었다. 이 때문에 맏아들 방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7남 방번을 이용하려 했지만 신하들은 어리고 수줍은 성격을 약점으로 여겨 방원을 추천했다. 실제로 조선 건국에 중요한 역할을 한 방원은 왕비를 강제로 몰아 공양왕을 폐위하고 점점 약해지는 반군 정몽주를 죽인 장본인이다. 그러나 태조는 어린 방석을 세자로 삼고 참혹한 살육의 시작이 된다. 1황자의 난은 반대 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정도전과 개혁파를 제거하고 강 씨의 자녀를 모두 죽였습니다. 태조는 몸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뒤늦게 이 소식을 듣고 몹시 화가 나지만 정권의 권력은 이미 방원세력에게 장악되고 병상에 누워 있는 태조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결국 왕위는 자신의 의지가 아닌 타인의 의지로 물려받는다. 방과는 태자가 될 생각이 없었고, 태자 책봉 얘기가 나오자 “모든 공적이 방의 공덕인데 어떻게 왕세자가 되느냐”며 거절했다. -원?” 올라가다

퇴위

정종은 이방원의 추천으로 왕위에 올랐으나 방원이 실권을 쥐고 있었기 때문에 정치는 방원의 뜻이 아닌 방원의 뜻대로 흘러갔다. 한양은 지리적 문제로 수도를 개경으로 옮겼고, 막강한 양반 세력도 약화되었다. 왕비 정인왕후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지 못해 동생을 세자로 책봉했다. 그러나 이방원의 힘이 너무 강해서 실패하고 일당은 숙청당한다. 정종이 즉위할 때는 나라의 일보다 사냥과 격구 같은 오락에 더 관심이 많았고, 덕분에 방원과 친분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방원이 세자로 즉위한 후 정종과 그의 아내는 자신들도 죽임을 당할 것을 두려워하여 곧 왕위를 내주고 퇴위하였다. 사직 후 인덕궁에서 유유자적 살다가 향년 63세로 세상을 떠났다. 생전에는 묘비가 없었으나 숙종이 정종의 묘비를 하사하여 정인왕후와 김씨 부인이 함께 묻혔다.

정종은 잔혹한 학살에서 살아남아 왕위에 오른다. 이방원이 동생과 사이좋게 지내며 왕권에 관심이 없어 살아남는 모습을 보며 날마다 두려움에 떨었지만 점차 권력은 강해졌다. 형은 다르지만 권력에 걸림돌이 된 동생이 집요하게 살인을 택하는 모습을 보고 욕심을 부리지 않고 정부에 덜 신경쓰는 것이 사는 길임을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왕위계승의 전열은 아니었지만 그 배후에 막강한 세력이 있었기 때문에 오직 말만이 왕이라 불렸고 왕위를 넘기며 잠시 군림하였다. 그래서인지 정종은 왕으로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정종실록에는 총 6권의 책에 기록되어 있어 그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다. 그는 재위 기간 동안 좋지 못한 대우를 받았지만 아버지 이성계에 대한 충성심이 깊고 당대 가장 중요한 후손을 낳지 못한 아내를 책임지고 사랑하는 등 넓고 고상한 모습을 보였다. 그것이 그를 버틸 수 있었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